<기준의 한계>
“폭탄 세일합니다!”, “50% 할인, 어머니 지금 아니면 못 집어 갑니다!”, “1 플러스 1 행사 상품 받아 가세요.” 동네 가게부터 시작하여 편의점, 대형마트까지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할인행사를 하곤 한다. 소비자로서 비용을 최소화하며 최대의 효용을 이끌어 내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므로 위와 같은 행사가 있을 때면 행사 상품은 이미 두 손 한가득이다. 하지만 판매자 입장으로서 본다면, 할인 행사는 판매자가 절반의 가격에 판매하므로 이윤도 그만큼 비례하여 줄어들 것이다. 이는 판매자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경제 원칙에 위배된다.
필자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할인 판매를 한다면 남는 게 있을까?”에서 “경제의 기본 원칙에 의하면, 판매자는 더 큰 산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이에 대해 필자는 행동 경제학에서 다루는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를 인용하여 몇 가지 판매자의 판매 전략 예시와 이 닻 내림 효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상생활의 여러 상황을 고찰해보려 한다. 더 나아가 일상생활 넓게는 사회 속에서의 닻 내림 효과를 통해 “사회적 기준”에 대해 사회적으로 새롭게 재조명하고자 한다.
기준, 기본이 되는 표준. 경제학적으로 내포된 의미는 상품을 구매하며 얻어진 경험을 통해 체득화되어 심리학적으로 각인된 표준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기준을 통해 어떠한 것을 또는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결정할 때 기준에 의해서 판단하기도 하며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기준점을 제시해주어 어떠한 선택의 경로에 놓였을 때 우리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이 기준은 ‘닻 내림 효과’로 인해 잘못된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닻 내림 효과란 무엇일까? ‘닻 내림 효과’란 앵커링 효과 또는 정박 효과라고 불리기도 하며 배가 닻을 내리면 닻과 배를 연결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배가 움직일 수 있듯이 최초의 정보 즉, 처음에 인식된 인상적인 숫자나 사물이 기준점이 되어 이후 그 영향으로 인해 판단에 왜곡 또는 편파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이 이론은 심리학자이자 행동 경제학자의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가 실험을 통해 증명해낸 효과이다.
위 실험은 실험 참가자들이 1부터 100까지 있는 행운의 바퀴를 돌려서 나온 숫자가 유엔에 가입한 국가 중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이 보다 많은지 적은 지 추측해 보라는 질문의 실험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대부분 행운의 바퀴를 돌려 우연히 얻은 숫자와 비슷한 수치로 질문에 답하였다. 예를 들어, 바퀴에서 나온 숫자가 50이었다면 40~60 사이라고 답했던 것이다. 행운의 바퀴를 통해 얻은 수치는 실제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참가자들은 우연히 얻은 숫자에 영향을 받아 답을 하였다. 위 실험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처음에 인식된 영향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는 우리의 삶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마트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판매 전략을 세울 때가 그 예이다. 판매자는 할인 판매 전략으로 판매 가격에 빗금을 치고 화살표를 이용하여 할인된 가격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가 빗금 쳐진 가격을 기준으로 생각하여 밑에 제시된 가격이 싸다고 생각하는 심리적인 효과이다. 실제 애플의 판매 전략으로 처음 아이폰의 가격을 399 달러로 제시함으로써 우리 머릿속에 399 달러라는 기준점을 생기게 만든다. 다음날 매장에서는 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299 달러로 판매하며 실제 아이폰의 가격은 199 달러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싸게 샀다고 느낀다. 비슷한 판매 전략으로 판매자는 30% 할인, 50% 할인 등의 판매 전략을 세우는데 이는 소비자가 느끼기에 처음 판매 정상가가 기준이 되어 할인된 가격에 구입한다는 심리적인 영향을 이용한다. 이러한 심리적인 영향은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금하여 소비를 부추긴다. 이러한 판매 전략들은 닻 내림 효과뿐만 아니라 ‘초두 효과’를 통해 극대화된다. 초두 효과란 처음 입력된 정보가 나중에 습득하는 정보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효과이다.
이는 경제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황 속에서도 통용된다. 우리 사회는 사회가 원하는, 사회가 이루고자 하는 사회적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는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회규범’부터 출발하여 통상적인 사회적 기준에까지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통상적인 사회적 기준은 사회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함으로써 개개인의 능동적인 판단을 가로막으며 설령 능동적인 판단을 하였다고 하여도 그 판단은 사회적 기준이라는 닻에 얽매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우리는 이러한 기준에 사로잡혀 이 기준들로 하여금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기준들을 사회는 우리에게 주입하며 이 통상적인 사회적 기준을 벗어날 경우 작게는 눈치를 주거나 질책하며 크게는 개개인을 사회적 집단에서 배제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개개인이 아니며 사회가 판단하고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기준에 얽매여 우리 자신의 능동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으며 사회적 구성원 개개인이 닻에 한정된 시각이 아닌 제3자의 객관적인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적 기준이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에 있어서 오히려 개개인보다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회적 기준과 이 기준에서 벗어났을 경우 사회의 분위기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며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가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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